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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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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 호텔 20층 방.


깔끔한 인테리어가 빛나는 이 곳에, 안 어울리는 남자가 둘 있다.


한명은 공포로 벌벌 떨고 있고, 다른 한명은 머리를 움켜쥔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나와 존이다.


우리는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를 느끼고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내 마음 속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어떻게 도망쳐야할지,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존, 사채든 뭐든 끌어다 쓸게... 200만엔 준비할 테니까, 사장한테 제령해달라고 부탁해 줘...]


존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고개를 저었다.




[무리에요, 형씨. 사장은 한번 말한 건 절대 주워삼키지 않는 사람이라고요. 나보고 제령을 하라고 한 이상, 설령 나나 형씨가 죽어도 사장은 개입하지 않을겁니다.]


나는 테이블에 주먹을 내리쳤다.


[장난치냐! 내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형씨.]


[너도 그 여자한테는 못 이긴다면서!]


[형씨.]




[200만으로 모자라면 300만이라도 만들어 볼게! 그러니까 날 살려줘!]


[형씨!]


존은 소리를 치며 일어섰다.




[나를... 믿어주세요.]


[너를... 믿으라고...?]


존은 진지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한다.




그 날카로운 눈빛에 나는 당황했다.


[내가 형씨를 지킬 겁니다. 형씨는 내가 반드시 살려낸다고요. 설령 내가 죽더라도... 반드시 형씨는 내가 살려낼 거에요.]


나는 곤혹스러웠다.




이 녀석, 왜 그렇게까지 말하는거지?


[왜 그렇게까지 나를 지키겠다는거야? 너도 위험하다면서?]


존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제령을 할 때는 대개 수호령의 힘을 빌리게 됩니다. 형씨 아버님이요. 아버님하고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존이라는 이름... 형네 집에서 옛날 기르고 있던 개 이름이랑 같죠? 그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님은 웃으셨어요. 나는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형씨 아버님이랑 이야기하는 사이에 아버님한테 감화된 건지도 몰라요. 지금은... 형씨가 진짜 내 형처럼 느껴진다구요...]


[너...]


[아버님이 형씨를 지키고 싶어하는 건 분명합니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 가족들을 떠올렸어요. "미안하다" 는 마음으로 가득하셨죠. 그래서 지금도 아버님은 형씨를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싸우고 계신거에요. 저도 그 마음에 부응하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고 말았다.


존이 내 어깨를 잡는다.


[나를... 믿어주세요.]




내 어깨를 잡은 존의 손은 미지근했다.


늦은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어떻게 될까 무서웠다.




[존, 우리 아버지는 괜찮으셔? 저런 여자랑 싸우는 건 보통 일이 아니잖아.]


존은 노트북 키보드를 치면서 대답한다.


[여자는 형씨말고 가족분들한테도 침입하려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형씨는 내가 지키기로 하고, 아버님은 지금 다른 가족들을 지키고 계세요.]




나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그 여자, 가족들한테까지...]


[괜찮아요. 아버님이 지켜주실테니까.]




나는 컵의 물을 마셨다.


[저기, 존. 수호령이 아버지라는 건 알 거 같아. 하지만 네 수호령은 어떻게 되는거야? 그... 너는 가족이 없다고 했었잖아...]


[있어요. 제 수호령은 사장입니다.]




[어? 그 사람 살아 있잖아?]


[수호령도 악령도,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는 별 상관 없어요. 영혼이라는 말을 들으면 죽은 사람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거든요. 전에도 말했죠? 악령은 자신의 감정이나 의지에 의존해서 존재하고, 수호령은 따뜻한 기억에 의존해서 존재한다고요. 저한테는 사장과 함께한 따뜻한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내 안에서 형성된 사장의 이미지가, 수호령으로 자리잡은거죠. 이건 저 뿐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에요.]


나는 컵안의 물을 바라봤다.




이 녀석을 만나고, 이상한 이야기만 듣게 되는구나.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진다.


나는 놀라 소파에서 미끄러 떨어졌다.




[이런 시간에 누가 온걸까?]


존이 일어나 현관문으로 향한다.


[야, 괜찮은거야? 그 여자면 어떻게 해!]




존은 미소지으며, [괜찮아요.] 라고 대답했다.


문을 열자, 거기에는 사장이 있었다.


사장은 방안에 들어와 소파에 앉더니, 담배에 불을 붙인다.




[상태는 좀 어때? 젊은 노숙자 친구...]


젊은 노숙자 친구라...


어쩐지 이 사람한테는 완전히 기가 눌릴 것만 같다.




존은 글라스에 와인을 따라, 사장에게 건넨다.


[이런 새벽에 무슨 일이에요, 사장.]


[아, 네가 메일로 보낸 계획서를 읽었거든... 뭐, 나쁘지 않더라.]




[감사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착각을 했어.]


[착각이요?]




존의 표정이 흐려진다.


[뭐, 어쩔 수 없는거야. 나도 그걸 깨달은 건 아까 전이었으니까. 네가 못 알아차린 것도 무리는 아니지.]


[무슨 말씀이신가요, 사장.]




사장은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어낸다.


긴장된 분위기가 방안에 가득했다.


사장은 와인이 든 글라스를 입에 댔다.




붉은 와인이 든 글라스를 유연히 다루는 손가락 움직임이 인상 깊었다.


[아까 전에 이 젊은 노숙자 친구의 도플갱어가 나타났었지.]


[네. 저도 강제적으로 보고 말았습니다. 저도 침입당했던 거 같아요.]




존은 분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네가 현장 실습을 시작할 때, 안전장치 삼아 젊은 노숙차 친구에게 미리 방화벽을 심어뒀었어. 만약의 일을 고려해서 말이야. 하지만 그게 돌파당한데다 놈은 도플갱어까지 만들어냈지.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 더러운 여자한텐 그런 힘이 없을 거였거든. 뭔가 위화감 못 느꼈어, 존?]


[확실히 저도 놀랐습니다. 설마 사장의 방화벽이 찢어질 줄이야... 하지만 위화감이라니 무슨 이야기인가요? 뭔가 있는 건가요?]




사장은 깊게 연기를 들이마셨다.


[그 더러운 여자는 중심에 놓여있긴 하지만 핵심은 아니야. 그게 문제인거지. 나도 방금 전까지는 몰랐을 정도로, 핵심은 더 깊은 곳에 숨겨져 있어. 아마 그 녀석은 살아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고. 게다가 실력도 만만치 않아. 생각 이상으로 까다로운 문제였던거지.]


나는 아무 말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쩐지 이야기는 내가 예상도 못한 곳으로 뻗어나가는 듯 했다.


[그 핵심은 나한테 맡겨. 이 사건은 젊은 노숙자 친구가 의뢰한 것 이상이야. 공짜로 해주는 건 짜증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지. 그냥 내버려두기엔 너무 위험해. 다만 그 더러운 여자랑 하수인 세놈은 존 네가 책임지고 제령해라. 알았어? 영혼을 정화한다던가 그런건 생각하지 말고, 제령에만 전념하라고. 알았어, 존?]


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글라스를 가볍게 놀려 와인을 모두 마셨다.




사장이 방에서 나가고, 다시 나와 존 둘만 남는다.


떠나가며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아버님 성묘 좀 가라. 쓸쓸해 하고 계신다고. 그리고 가서 좀 자. 다크서클 장난 아니네.]




그러고보니 최근 온갖 일들이 겹치는 바람에, 아버지 성묘도 제대로 가질 못했었다.


이 소동에서 살아남는다면, 꼭 성묘하러 가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어쩐지 몹시 지쳐 있었다.


자는 것은 두려웠지만, 감겨오는 눈꺼풀은 이길 도리가 없었다.




나는 어느덧 잠에 빠져 있었다.


눈을 뜨자, 나는 어느 빌딩 옥상에 서 있었다.


[여기는...?]




새벽, 빌딩 옥상에 차가운 바람이 분다.


[존! 이봐, 존!]


큰소리로 존을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질 않는다.




나는 근처를 바라보다, 시야 구석에 무언가 있다는 걸 꺠달았다.


그 순간, 머리를 얻어맞는 듯한 강한 충격이 나를 덮쳤다.


나는 힘없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지면에 쓰러진 나를, 처음 보는 거구의 남자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너는...?]


남자는 주저앉아 내 머리채를 붙잡는다.




[발버둥치지 마라. 왜 가만히 죽지 않는거지?]


남자 뒤에는 미치광이 여자와 의사, 경찰관, 간호사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나도 방금 전까지는 몰랐을 정도로, 핵심은 더 깊은 곳에 숨겨져 있어."


나는 사장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 녀석이구나.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네놈인가! 네놈이 나를!]


남자는 내 머리를 땅에 마구 찍는다.




나는 머리에 미지근한 게 흐르는 걸 느낀다.


그럼에도 나는 남자를 노려봤다.


용서할 수 없다.




나를 이딴 일에 말려들게 만든 이놈을 용서할 수 없었다.


[네놈만은... 네놈만은 절대로 용서 못해!]


남자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네가 나를 용서하고 말고 하는게 아니야. 내가 너를 죽이는가 아니냐다. 귀찮은 남자를 끌고 오다니. 적당히 해둬. 나도 화가 나 미칠 지경이라고. 네놈 가족까지 데려오지 않으면 여동생도 만족 못할 거라고. 그냥 가만히 죽었으면 좋았을텐데 일이 귀찮아졌잖아.]


남자는 이를 갈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가족한테 손대는 것만은 절대 용서 못해!]


남자는 내 팔을 떨쳐낸다.


[네놈 애비도 그런 말을 했었지. 부모자식이 멍청한 것도 매한가지군. 이제 됐다. 나도 진심으로 너를 죽이고 싶거든.]




내 뒤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뒤를 보자, 거기에는 내가 있었다.


도플갱어다.




"형씨! 저놈한테 절대 닿으면 안됩니다! 만약 닿으면 나도, 사장도 형씨 생명을 구할수가 없어요!"


나는 존의 말을 떠올리고,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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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나와 존은 호텔방에 있었다.


[좋은 방이죠? 여기, 사장의 사촌이 운영하는 호텔이랍니다.]




확실히 좋은 방이었다.


20층에 위치한 객실 창문 너머,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진다.


[형씨, 가족한테는 연락했어요?]




[응.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지만 어떻게든 이해시켰어.]


[일이 끝날 때까지는 미안하지만 형씨를 여기 가둬놔야 하니까요. 까딱하면 가족한테까지 폐 끼칠 우려가 있고...]


내게 가족이란 어머니와 누나, 둘이다.




아버지는 3년 전 가을,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집에서 혼자 돌아가신 걸 발견했으니.




아버지는 정말 좋은 분이셨다.


나는 생애 가장 많이 울었다.


어머니는 몸도 약하셔서 내가 지켜드려야 할텐데, 정작 내가 이꼴이라니.




정말 한심했다.


[이봐, 존. 너한테도 가족이 있겠지?]


내 질문에, 존은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피가 이어진 가족은 없습니다. 저, 고아원 출신이거든요. 그래서...]


[그렇구나. 괜히 물어본 거 같네.]


[아뇨, 저한테도 가족이 있습니다. 사장이랑 다른 사원들 모두요. 저는 사장이 받아주지 않았다면 정말 쓸모없는 인생을 보내다 끝났을 거에요.]




그렇게 말하고 존은 상냥히 미소지었다.


[그 여사장, 히스테릭하고 무서운 사람 같았지만 네 말대로 원래는 좋은 사람 같더라.]


[뭐, 그렇죠. 평상시에는 무섭지만. 그리고 형씨...]




[응?]


[그 사람, 여자 아니에요.]


[뭐?]




[이미 개조가 끝난거죠.]


한동안 나는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은 오랜만이다.




존은 계속 노트북으로 계획서를 만들고 있었다.


[이봐, 존.]


[왜요?]




[나 같은 사람, 많이 있어? 이렇게 영문도 모른채 악령한테 씌어버린 사람이 나 말고도...]


존은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


[많죠. 하지만 형씨는 운이 좋은거에요. 우리랑 만났으니까. 대개 아무 것도 못하고 그냥 죽어버려요. 처음 형씨가 말했던 것처럼,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믿어버린채... 다들 죽어가는거죠.]




존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최근 들어 연간 자살하는 사람은 3만명이 넘어요. 하루에 100명 꼴로 목숨을 끊는거죠. 행방불명이나 왜 죽었는지 모르는 경우까지 합치면 더 있을 수도 있구요. 사장은 말했었어요. "일본인의 수호령은 해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어." 라고요. 그 탓에, 정말 약한 악령이라도 간단히 사람한테 씌인다는거죠. 물론 자살한 사람 전부가 악령 때문은 아니겠지만... "정말 슬픈 일이야." 라고 사장은 말했었습니다.]


[수호령인가... 아까 전에도 말헀지만, 나는 영혼 같은 건 잘 몰라. 수호령이라는 건 뭐야?]




존은 노트북에서 손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수호령과 악령... 같은 영혼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존재입니다. 악령은 자기자신의 감정과 의지에 의존해서 존재하죠. 반대로 수호령은 인간의 따스한 기억에 의존해 존재하고요. 악령의 힘은 자신의 염원이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 좌우되고, 수호령의 힘은 따스한 기억에 따라 좌우되는 겁니다.]


[따스한 기억? 그게 뭐야?]




[상냥함이죠. 사람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보호받으면서 상냥함이라는 걸 배우게 됩니다. 서로 돕고 돕는거죠. 그런 정신이 곧 수호령의 힘으로 이어지는 거에요.]


나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말 뿐이었다.


다만 존이 너무나 진지한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거, 무슨 종교 같은거야?]


[아뇨. 사장이 한 말을 그대로 읊은 것 뿐. 종교단체 같은 건 아니에요.]


존이 말한대로 일본인의 수호령이 전체적으로 약해져 간다면, 그것은 서로 돕고 돕는 정신이 결여됐기 때문인가...




확실히 슬픈 일이다.


그렇다면 나도 그 서로 돕는 정신이 없기 때문에 이런 꼴이 되어 버린건가...


[형씨의 수호령은 강해요.]




[뭐?]


[전에도 말했지만, 형씨는 원래 죽었어도 이상할게 없는 몸이라고요. 그 정도로 강한 놈이 씌어있어요. 하지만 형씨는 안 죽고 살아있잖아요. 수호령이 지켜주고 있는 덕입니다.]


[내 수호령이라는건...?]




[아버님이세요. 형씨 아버님이 지켜주고 계십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막아내고 계신 정도지만요. 정말 온힘을 다해주고 계세요. 형씨 아버님, 정말 좋은 분이셨던 것 같네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조용히 창밖 너머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았다.


야경이 희미하게 번져보였다.




저녁밥 삼아 존이 스파게티를 권한다.


[먹어두세요. 이제부터는 체력싸움이 될테니까요.]


존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 내게는 식욕이 없었다.




반 정도 깨작대는게 고작이었다.


그걸 보며 존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불안해서 마음이 바짝 쪼그라든 상태였다.




뭐가 뭔지도 모를 일에 말려들어, 이 모양 이 꼴이다.


납득이 가질 않았다.


어째서 이런 일에 내가 말려들고 만걸까.




스스로에게 물어도, 존에게 물어도, 내 마음은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 속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인다.


이전에는 나도 그 흐름 속에 있었는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생각에 잠겨있던 내 귓가에,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나는 눈을 크게 뜰 수 밖에 없었다.




사람 손이 창 반대편에 달라붙어 있었다.


여기는 20층이다.


베란다도 없다.




사람이 서 있을 수 있을리 없었다.


그런 곳에 사람 손이 있는 것이다.


나는 존의 이름을 외쳤다.




그 순간, 존은 내 앞을 가로막고 서서 [창에서 떨어지세요!] 라고 외쳤다.


존은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창문에 붙은 손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괜찮아요. 내가 있으니까. 이 방 안으로는 못 들어옵니다.]


존은 벌벌 떨고 있는 내게 말했다.


그 순간, 서서히 손의 주인이 기어다니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머리를 한방 세게 맞은 듯한 충격에 말을 잃었다.


내가 거기 있었다.


창 너머에, 내가 있었다.




몇번을 다시 봐도 나였다.


내 머릿속은 완전히 새하얘졌다.


왜 내가 창 너머에 붙어있는 걸까.




나는 여기 있는데, 창 너머에도 내가 있다.


내 머릿속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사장님, 접니다! 존이요! 큰일났어요! 도플갱어가 나왔어요! 형씨 도플갱어가 나왔다고요! 제 눈에도 보여요! 지금 창문 밖에 있어요! 네! 부탁드립니다!]




존은 사장에게 전화를 한 듯 했다.


무언가를 부탁하고, 존은 전화를 끊는다.


[형씨! 저놈한테 절대 닿으면 안됩니다! 만약 닿으면 나도, 사장도 형씨 생명을 구할수가 없어요!]




창 너머 또 하나의 나는 격렬히, 미친듯 창문을 두드린다.


그 충격이 연쇄되듯, 방안이 쿵쿵 울린다.


[열어라아아아아! 열어라아아아아!]




내가 창밖에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나는 잔뜩 겁에 질려, 마음 속으로 그저 "멈춰줘, 이제 그만 멈춰줘." 하고 외칠 뿐이었다.


존은 [빨리, 빨리, 빨리...] 하고 중얼거린다.




다음 순간, 존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자, 창 너머 또 하나의 내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녹아내리듯 그대로 사라졌다.


[뭐야! 저건 도대체 뭐냐고! 존! 내가 있었어! 내가 있었다고!]




고함치는 나를 무시하고, 존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네, 사라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나는 뭐가 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존은 소파에 앉아, 지금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진짜 큰일났습니다, 형씨. 창밖에 있던 형씨는, 그 여자, 나나코가 만들어낸 분신이에요. 그 분신에 닿으면 무조건 죽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도플갱어라는거죠. 그 여자는 진심으로 형씨를 죽이려드는 거에요. 도플갱어의 살상력은 비정상적으로 높습니다. 아마 원래 그 여자는 형씨를 느긋하게 괴롭히다 죽일 작정이었을거에요. 그렇게 해야 형씨가 강한 악령으로 거듭나고, 여자한테 더 도움이 될테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나타났으니 마음이 급해져 바로 수를 쓴 거 같아요.]


존은 씩씩대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형씨한테는 사장 특제 방화벽을 심어뒀었습니다. 보통 악령이라면 손 하나 깜짝 못할 놈으로요. 그런데 그 여자는 그걸 가볍게 돌파해서 형씨의 분신을 만들어낸 거에요. 더 문제는, 저한테도 형씨 분신이 보였고, 그게 제가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라는 거에요. 그 여자가 강제로 저한테도 보여준거죠. 저도 어느샌가 그 여자한테 씌어버린 거에요. 금방 전에는 사장에게 부탁해 제령을 받았습니다. 지금 저로서는 저걸 쫓아낼 재간이 없어요. 저한테 가장 충격인 건,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그 여자가 저렇게 완벽한 분신을 만들어 저랑 형씨 앞에 나타냈다는 거에요. 저는 그 전까지 전혀 눈치도 못 챘고요. 저 여자는 저보다 아득히 윗단계에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존은 분한 표정으로 말을 맺었다.


내 몸은 여전히 벌벌 떨리고 있었다.




존의 이야기가 더욱 내 공포심을 부추겼다.


나는 존에게 고함쳤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건데!]




존은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떻게 하지...]


그렇게 말하고, 존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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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 광장 벤치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독한 환경을 견디다 못해, 나는 이제 생각조차 놓아버린 터였다.


단지 나는, 일주일 전 만났던 젊은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소리가 난다.


어느새인가 그는 내 곁에 앉아 있었다.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더 심해졌네. 형씨, 이제 한계구나?]




젊은 남자는 고개를 숙여 지면으로 연기를 뿜어낸다.


[정말로 도와줄거야?]


나는 매달리듯 물었다.




[뭐, 할 수 있는 건 해봐야지. 이대로 형씨를 내버려두면 죽을 거라는 건 뻔히 보이니까. 그걸 알면서도 죽게 두면 나도 영 편치가 않아.]


[어떻게 할건데?]


[뭐, 일단 따라와봐.]




그렇게 말하고 젊은 남자는 주차되어 있던 차에 나를 태웠다.


잠시 차를 달려, 어느 빌딩 안에 들어간다.


거기 젊은 남자의 사무소가 있다고 한다.




"○△× 탐정 사무소" 라고 써 있는 사무실 한칸.


여기가 그의 사무소였다.


[탐정?]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젊은 남자는 [본업은 말이지.] 라고 대답했다.


사무소 문을 열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 지금은 다들 나가고 없어. 아마 사장은 있을테지만.]




[나는 돈은 한푼도 없어.]


[음... 우리 사장, 돈에는 귀신이지만 근본은 좋은 사람이니까 아마 괜찮을거야.]


그렇게 말하고 젊은 남자는 안쪽 "사장실" 이라고 써진 문 앞으로 나아간다.




가볍게 두 번 노크하자, 안에서 [들어와.] 하는 대답이 날아왔다.


문을 열자 거기에는 누가 봐도 커리어 우먼이라고 느낄만한 풍모의 여자가 있었다.


이 여자가 사장이구나.




사장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혀를 찼다.


[또 변변치 않은 놈을 데리고 오다니...]


작은 소리였지만, 확실히 그렇게 말했다.




명백히 나를 환영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사장, 아니, 그, 저, 그러니까, 그게...]


젊은 남자는 횡설수설한다.




사장은 남자를 째려보며 서류를 책상에 내리친다.


[너말야! 우리 회사는 자선사업하는 곳이 아니라고! 이런 돈도 없는 놈을 데려와서 어떻게 벌어먹겠다는거야!]


확실히 남자도 겁에 질릴만한 노성이었다.




[아니, 그치만 사장도 보면 알잖아요! 이 사람 그대로 두면 죽어버린다니까요?]


[이 멍청아! 사람 좋은 것도 정도가 있지!]


고개를 푹 떨구는 젊은 남자.




아무래도 이 녀석은 진심으로 날 돕고 싶어서 데려왔던 모양이다.


고마운 이야기지만, 나는 다른 사람에게 폐까지 끼쳐가며 도움을 구할 생각은 없었다.


발걸음을 돌려, 나는 사무소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사장이 나를 불러세운다.


[기다려, 젊은 노숙자놈아. 이 녀석이 말한대로, 이대로라면 넌 곧 죽어. 어쩔 생각이야?]


[아까 전부터 왜 그렇게 내가 죽는다고 말하는거죠? 확신하는 것 같은데? 나는 확실히 무언가에 쫓기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 말마따나 돈은 한푼도 없습니다. 이 젊은 친구한테 폐를 끼칠 생각도 없으니까, 나는 가보겠습니다.]




사장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는다.


[다른 사람한테 폐 끼치지 않겠다니, 좋은 마음가짐이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생각은 있어?]


[무슨 소립니까?]




[방법은 있다는거지.]


[서, 설마 사장...]


젊은 남자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조금 전 너는 나한테, 무슨 확신이 있길래 내가 죽을 거라고 말하는거냐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말야, 아무래도 귀찮은 게 씌어있는거 같아. 너, 목을 매달고 추레한 원피스를 걸친 여자라고 하면 짐작 가는게 있지?]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여자에게 관해서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는데.


[후후, 놀라는구나. 뭐, 나도 일단 본업은 탐정이지만 부업으로 영능력자 일도 하고 있거든. 그건 그렇더라도 재미있는 얼굴로 놀라네. 후후, 좋아해, 그런 표정.]




나는 생각했다.


본업이 탐정이고 부업으로 영능력자라고?


이게 무슨 이상한 소리인가.




여기 그대로 있어도 괜찮은걸까?


하지만 그 미치광이 여자에 관해 알아 맞췄다.


그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미치광이 여자는 정말 귀신인걸까?


단순한 내 착각이 아니라?


[조금 전 말한 좋은 방법이라는건...?]




사장은 쓴웃음을 짓는다.


[아무도 좋은 방법이라고는 말 안했어. 그저 방법이 있다고만 했지.]


[그래서 그 방법이라는 게 뭡니까?]




[나한테 제령을 부탁한다면 최소 200만은 각오해야 해. 너한테는 그 정도 돈 없잖아. 하지만 저기 있는 녀석이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저 녀석은 영능력자로서는 완전 밑바닥이야. 그러니까 저 녀석의 현장 실습 겸해서 제령을 받는다면... 돈은 안 내도 좋아. 반대로 이쪽이 사례금을 내도록 하지. 뭐, 몸이 어떻게 될지 보증은 절대 못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사장은 미소지으며 담배를 비벼 껐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젊은 남자는 머리를 움켜쥐고 하늘을 바라보며 [오마이갓...] 하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니, 사장. 저 어떻게 하면 좋겠슴까?]


젊은 남자의 질문에, 사장은 [뭐?] 하고 기분 나쁜 티를 팍 냈다.


[지금부터 고객하고 상담해! 그 후에 제령방법을 검토하고, 계획서를 내일까지 나한테 제출해. 알았어?] 




[네, 네! 아니, 그렇지만, 그게, 저...]


[됐고, 빨리 일이나 시작해. 이 멍청아!]


사장에게 내쫓기듯, 우리는 사무소를 나왔다.




그 후, 카페에 들어갔다.


[좋은 가게죠? 여기도 사장 가게랍니다.]


젊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익숙하다는 듯 자리에 앉는다.




자리는 개인실처럼 되어 있어, 주변에 이야기가 들릴 염려가 없었다.


커피를 2잔 주문하고, 젊은 남자는 노트북을 꺼냈다.


[그럼 형씨, 지금부터 상담을 시작할게요. 준비는 됐죠?]




[신경이 쓰이는 게 있는데...]


[뭔데요?]


[너 아까 전까지는 반말로 말하더니 갑자기 존댓말로 바뀐 이유가 뭐냐?]




[이제 형씨가 정식으로 내 고객이 됐으니까요. 사실 사장이 처리해줬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죠, 뭐. 내가 현장실습 겸 형씨의 제령을 하면, 회사에서 인재육성비로 예산이 나올 겁니다. 형씨한테도 사례금으로 2만엔 나올거구요. 어떤 의미에선 금전적으로는 이게 최선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까 사장 말처럼, 나는 정말 밑바닥 수준이라 까딱 잘못하면 어찌될지 몰라요. 다만 최선을 다할게요. 대충했다가는 나까지 죽을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는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무슨 소린지는 대충 알겠어. 하지만 나는 영혼 같은 건 전혀 아는게 없어. 솔직히 그 여자도 내가 정신이 이상해져서 환상을 본 거라 생각했고. 갑자기 귀신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당황스럽다고.]




[그렇겠네요. 그럼 영혼에 대해 잠깐 설명할게요. 믿던 말던 그건 형씨 자유로 맡기죠.]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금 애달파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보통 샐러리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영혼이니 뭐니 이상한 것들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우리가 고객한테 영혼에 관해 설명할 때는, 컴퓨터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컴퓨터?]


[네, 컴퓨터요. 지금 형씨 상태를 컴퓨터에 빗대면 바이러스에 감염된거죠. 형씨가 곧 컴퓨터고, 바이러스는 악령. 즉, 형씨가 말하는 미치광이 여자 말이죠.]


[그거 참 신선한 비유네.]




[악령이 씌었다고 하죠. 들어본 적 있으시죠? 그럼 구체적으로 인간의 어디에 씌이는 건지, 아세요?]


나는 조용히 커피를 한모금 들이킨다.


[뇌입니다. 악령은 인간의 뇌를 해킹하는 것처럼 씌이는 거에요. 그리고 뇌안에 바이러스처럼 뿌리내려 지배하고,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환각을 일으켜 정신과 육체를 파괴시키는 겁니다. 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당연히 다른 사람들은 알아차릴 수가 없죠. 일반적인 영혼이라면,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호령이 방화벽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걸 넘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드물게 강력한 해킹 능력을 가진 악령도 있거든요. 우리 같은 영능력자들은 악령에 씌인 인간의 뇌에 개입해 제령을 하는 게 일인 겁니다.]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나는 얽히면 안 되는 곳에 발을 디디고 만 것일까?


그런 기분 뿐이었다.




[여기까지 뭐 질문 있으신가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노트북에 무언가를 계속 치고 있었다.


[그 악령이라는 건, 왜 나한테 씌인거야? 나와는 아무 인연도 없는 여자일텐데.]




젊은 남자는 계속 노트북 키보드를 두들겨가며 질문에 답한다.


[우연히 씌었다고 하는 게 적절할지도 모르겠네요.]


[우연이라고? 아무 이유 없다는 거야?]




[네. 우연히 침입하기 쉬웠다는 이유 뿐일겁니다. 진짜 목적은 누가 되었든 괜찮으니까 자기 수중에 넣겠다는 거겠죠. 악령은 산 인간을 죽이고, 수중에 넣으면서 세력을 늘려갑니다. 형씨를 본진으로 삼고, 계속 범위를 넓혀가겠다는 속셈인거죠.]


[뭘 위해서?]


[아마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서. 아니면 원한을 채우기 위해서든가요. 양쪽 모두일 수도 있구요. 뭐, 그런거에요. 정작 그런 걸 해봐야 무의미하달까, 오히려 역효과만 일어나지만. 그녀가 아무리 채우려한들, 그건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거든요.]




[완전히 제멋대로야... 테러리스트 같네... 질문이 하나 더 있어. 너는...]


[존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존?]




[동료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본명이 좀 말하기 그래서.]


존인가...


옛날, 집에서 기르던 개랑 같은 이름이다.




[그럼 존. 아까 저는 사장한테 날 떠맡으라는 명령을 듣고 머리를 감싸쥔 채 "오마이갓" 하고 중얼거렸지? 그리고 아까 전에는 대충 했다가는 너도 죽는다고 했고. 그걸 좀 설명해줬으면 하는데.]


[아, 들으셨나요? 음, 뭐라고 할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감당할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어쩔 도리가 없는거야?]




[형씨, 혹시 모르겠어요? 의사랑 경찰관, 간호사까지 남자 세명.]


나는 놀랐다.


이 녀석 그걸 어떻게 아는거지.




[짐작가는 건... 있어.]


[그 자식들은 형씨가 말하는 미치광이 여자가 지금까지 죽여온 놈들이에요. 지금은 완전히 그녀한테 종속되서, 그 여자의 방화벽 역할을 하고 있죠.]


[죽여왔다고?]




[그래요. 지금 형씨처럼 악령이 씌여서, 괴로워하다 죽은겁니다. 개중 의사랑은 연결이 강해요. 아마 첫 피해자일테고, 부모자식 관계였는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홋카이도에서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고 있었다.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건, 그 세명 때문입니다. 사장은 형씨를 본 순간 미치광이 여자의 모습까지 확인했을 거에요. 하지만 저한테는 아직도 여자는 보이지가 않아요. 고작해야 방화벽인 그 세 남자만 보이는 수준까지만 침입할 수 있어요.]




홋카이도에서 봤던 환상.


그 병원 안에서 만난 세 남자가, 모두 그 여자에게 살해당했었다고?


[만약 억지로 그들을 돌파하려다간, 그들에게 발목을 잡혀 먹혀버리겠죠. 그 틈에 여자가 역으로 침입해 형씨처럼 나한테 씌일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그렇게 되면 나도 죽을 운명인겁니다.]




그럼 그 때 의사가 했던 말의 뜻은 뭐지?


나나코?


그 여자의 이름인가?




[방법은 일단 생각해보겠습니다. 나도 이 일을 계속 하려면 어떻게든 형씨 구하는데 목숨을 걸어봐야 할테니까.]


사회적으로 말살?


자신한테는 무리라고?




고독을 공유해?


나는 한번에 알듯말듯한 정보를 잔뜩 들은 탓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형씨, 괜찮아요?]




존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다.


머리가 혼란스럽다.


[저기, 존. 만약 이대로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거야?]




키보드를 치던 존의 손가락이 멎는다.


[죽겠죠. 사고사던, 병사던, 자살이던... 나는 예언자가 아니니까 사인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지금까지 세 사람이나 죽였어요. 정말 위험한 여자입니다. 가만히 있는다면 형씨도 살해당하겠죠, 아마.]


나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미칠 것 같았다.


[존... 내가 지금까지 그 여자를 본 건 두번이야. 그 이야기를 해줄게.]


나는 존에게 홋카이도에서 있었던 사건과, 처음 존을 만난 날 밤에 있었던 사건을 이야기했다.




존은 진지한 시선으로 내 이야기를 들었다.


다 이야기하고 난 후 존이 꺼낸 첫마디는 [예상 이상으로 귀찮을 것 같네요.] 였다.


[그렇게 어려워?]




[어렵습니다... 형씨, 그 병원 안에서 "이건 현실이 아니야." 하고 위화감을 느낀 적 있지 않아요?]


[위화감은 없었어. 지금도 그건 현실처럼 느껴지고.]


그 이야기를 듣자, 존의 표정은 더욱 심각하게 굳었다.




[그 정도로 현실적인 병원을 형씨 뇌안에서 구현하다니... 게다가 동시에 세명을 한 자리에 불러내고... 그건 그 여자, 나나코라고 했죠? 그 여자가 형씨의 뇌를 꽤 깊은 부분까지 침식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세명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거고. 상당히 심각한데요, 이거.]


나는 할말을 잃었다.


갑자기 바닥 없는 늪에 푹 빠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형씨, 솔직하게 제 감상을 말해볼까요.]


[뭔데?]


[지금까지 잘도 살아있었네요.]






* 이 이야기는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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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홋카이도 여행 이후 3개월.


나는 지금, 도내 역전 광장 벤치에 앉아있다.


여름 더위도 꺾이고, 거리에는 겨울 기색마저 감도는 가을 바람 부는 날이었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거리의 색이 변하듯, 지난 3개월간 내 인생도 크게 바뀌었다.


그날, 나와 함께 홋카이도를 여행했던 오토바이는 이제 없다.


트럭과 정면충돌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대파됐다.




나는 그 사고로 인해 왼팔과 왼다리, 왼쪽 쇄골과 늑골까지 4곳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전치 5개월짜리 부상이었다.


살아남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다섯달간 일도 못하는 인간을 필요없다며, 회사에서는 서류 한장으로 나를 잘라버렸다.




결국 오토바이도 잃고 일자리도 잃은 내게 남은 건 얼마 안 되는 저금과 너덜너덜한 몸뚱이 뿐이었다.


다행히 큰 후유증 없이 회복은 했지만, 왼팔은 묘하게 회복이 늦었다.


다리와 늑골, 쇄골은 거의 멀쩡해졌는데, 왼팔만큼은 접혀서 펴지지가 않았다.




의사도 불가사의라고 말할 정도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 나는 왜 사고를 일으킨 것인지, 전혀 기억이 없다.




의사는 사고의 쇼크로 인한 일시적 기억장애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나는 완전히 사회에서 동떨어진 몸이었다.




설령 부상이 낫는다 하더라도, 내게는 돌아갈 직장이 없다.


나는 완전히 살아갈 자신을 잃은 터였다.


이대로 나는 사회 부적응자로서, 마른 나뭇잎처럼 헛되이 죽어가는걸까.




그런 생각들만이 머릿 속을 가득 채웠다.


내가 지금 역전 광장에 앉아있는 이유는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병원에 가기 위해 이 역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갑자기 인파 속에 발이 묶여, 그대로 넘어졌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슬쩍 시선을 주고, 곧 나를 지나쳐 간다.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딱히 도와줬으면 하는 생각도 없었으니.




밉다는 마음도, 원망스러운 기분도 없다.


단지 스스로가 비참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약해진다는건 고독하고 비참한 감정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매일 같이 울고만 싶은 나날이었다.


역전 광장 벤치에 앉아, 나는 쉬고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걸 보며, 나는 과거의 일상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무렵으로 돌아가고 싶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갑자기 한 젊은 남자가 내 옆에 앉았다.




젊은 남자는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하늘로 연기를 뿜었다.


[형씨, 위험해 보이네.]


젊은 남자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입 다물고 계속 인파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딱히 이상한 놈은 아니야. 지금 형씨를 보면 도움이 필요해보여서.]


[도움? 도움 따윈 필요없어. 몸만 좋아지만 나도 혼자 살 수 있다고.]




젊은 남자는 한숨을 쉬듯 연기를 뿜어냈다.


[그 몸은 더 이상 낫지 않아. 설령 좋아진다 하더라도 같은 일을 반복할 뿐이고.]


나는 조용히 사람들 오가는 것만 바라보았다.




대답할 기력도 없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여기로 와. 그럼 우리가 형씨의 힘이 되어 줄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젊은 남자는 자리를 떠났다.




나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저런 놈한테 저런 소리를 들을 정도로 형편없는 꼴이 된건가.


그날 밤, 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누나가 종종 돌봐주러 올 때를 빼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고독하고 좁은 아파트에서, 그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잠에 빠졌다, 갑자기 깨어난다.




천장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것도 사람 한 명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구멍이.


난데없이 나타난 천장의 구멍에 놀라, 나는 몸을 일으키려했다.




하지만 무언가에 얽매인 것처럼 몸은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나는 패닉에 빠졌다.


천장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 전혀 움직이질 못한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발버둥치던 내 귀에, 무언가가 질질 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천장 구멍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온몸에 경계신호가 흐르기 시작한다.




기분 나쁜 기색이 천장 구멍 안에서 가득 흘러넘치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것은 꿈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필사적으로 빌었다.


눈을 뜬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홋카이도에서 봤던 미치광이 여자가 천장 구멍 안에 있었다.


내 심장은 터질듯 뛰었다.


미치광이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보았다.




움직일 수 없는 나는, 그저 벌벌 떨 뿐.


미치광이 여자의 입이 우물우물 기묘하게 움직인다.


마치 껌을 씹는 듯한 움직임 뒤, 여자의 입에서 천천히 피가 흘러 떨어져 내렸다.




그 피가 방울져 내 얼굴에 달라붙는다.


여자의 입에서 나온 피는 사람 피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차가웠다.


시체의 피.




내 머릿속에는 그 생각만 들었다.


나는 절규했다.


누구라도 좋으니 알아차려 줘.




누군가 도와줘.


내 얼굴을 가득 메울 정도로, 계속해서 여자는 피를 토해냈다.


나는 외쳤다.




마음 속으로부터 외쳤다.


도움을 구해 미친듯 외쳤다.


그러자 여자는 구멍에서 몸을 질질 끌고 나와, 그대로 천장에서 떨어져 내려왔다.




내 심장은 멈추기 직전이었다.


떨어진 여자는 천장에 매달리듯 목을 걸고 있었다.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본다.




여자의 입에서는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온다.


차가운 피가 여자의 흰 원피스를 붉게 물들인다.


갑작스레 여자의 목을 매단 로프가 끊어진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의 줄이 끊기듯, 여자는 힘없이 내 배 위로 떨어졌다.


내 공포는 정점으로 달하고 있었다.


질질 끌듯, 여자의 얼굴이 내 귓전에 다가온다.




[이제 너는 내 거야...]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내 몸을 만지작거린다.


나는 공포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용서해 줘, 살려줘.]


간절히 바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여자는 내 입에 들이대듯 불쾌한 키스를 해온다.




나는 울면서 흐려진 소리로 절규했다.


그 순간, 여자는 사라졌다.


나는 대량의 오물을 입에서 토했다.




아침, 눈을 뜬 내 주변은 내가 토한 토사물투성이였다.


거울을 들고 얼굴을 본다.


여자의 피는 묻어있지 않았다.




침대 주변에도 여자의 피는 없었다.


천장도 멀쩡했다.


그저 내 토사물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




나는 짐을 정리하고 아파트를 뛰쳐나왔다.


낮에는 역 구내에서 쉬고, 밤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전전하며 버텼다.


나는 이제 혼자 있는 걸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사람이 있는 곳에 머물고 싶었다.


그런 생활이 일주일 가량 이어졌다.


내 심신은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좀체 낫질 않는 몸.


익숙해질 수 없는 생활 환경.


내 안에서 수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열심히 일을 하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숙자와 다름 없다.


그 이유라곤 그 미치광이 여자가 내게 씌었기 때문이라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유였다.


정신이상자라고 불려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이제 정말 끝인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내 마음이 반쯤 죽어 있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일 뿐이었으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 젊은 남자와 만났던 역전 광장 벤치에 앉아있었다.


마지막 의지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아무 생각 없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여름 더위도 꺾이고, 거리에는 겨울 기색마저 감도는 가을 바람 부는 날이었다.


나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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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여름,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홋카이도 투어에 나섰다.

 

목적은 홋카이도 일주.

 

일정은 사흘간.

 

 

 

뭐 하나 정해진 것 없는 나홀로 여행이었다.

 

홋카이도는 예상 이상으로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다.

 

도시와 도시 사이 거리가 100km가 넘는 곳도 있었으니.

 

 

 

그 사이에는 편의점은 커녕 자판기 하나 없다.

 

마음 편히 장거리 여행를 즐기려 왔지만 최악이었다.

 

정말 장거리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고통에 겨울 수준이었으니.

 

 

 

내가 정한 여행의 컨셉은 최대한 돈을 쓰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여관이나 호텔에서는 결코 묵지 않고 여행했다.

 

그 와중에 고민이 생기는 건, 주유소가 도시에만 있다는 점이었다.

 

 

 

24시간 영업하는 곳도 드물다.

 

대개의 주유소는 저녁 7시쯤에는 문을 닫아버린다.

 

심지어는 오후 5시에 문을 닫아버린 곳도 있었다.

 

 

 

내 오토바이는 연비가 그닥 좋은 편이 아니라, 기름을 꽉 채운 상태로도 160km 정도 밖에는 갈 수가 없다.

 

일정은 고작 사흘.

 

한밤 중에도 계속 달리지 않으면 홋카이도 일주라는 목표는 달성할 수가 없다.

 

 

 

하지만 멍청한 나는 휴대용 휘발유 캔도 준비해 오질 않았다.

 

나흘 뒤에는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빠듯한 상황.

 

이래서는 도저히 목표를 달성할 수가 없겠다.

 

 

 

반 정도 온 후에야, 나는 그걸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홋카이도 일주는 단념하고, 그대로 가로질러 하코다테까지 간 다음 배를 타고 돌아갈까?

 

 

 

하지만 어떻게든 고집부려 오타루까지 돌아가 일주를 해내볼까?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일주를 해내기로 결심했다.

 

[포기하는 그 순간 시합은 끝이다.]

 

 

 

안선생님의 한마디가 귓가에 울려퍼진 느낌이었거든.

 

이틀째 밤, 나는 달리고 있었다.

 

홋카이도의 밤은 조용하고 어둡다.

 

 

 

도쿄의 밤이 낮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질만큼, 조용하고 어둡다.

 

주변에는 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마치 나를 압도하듯 우뚝 솟아있다.

 

문득 주변을 보니, 나무 속에 삼켜져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상황판을 보니, 기름이 모자라다고 깜빡이는 게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휴게소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거기서 눈을 붙이기로 했다.

 

 

 

내가 멈춘 휴게소는 가설 화장실이 하나 있을 뿐, 그것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정말 너무 외로웠다.

 

주변에는 민가는 커녕 사람 한명 없다.

 

 

 

작은 가로등만이 나와 내 오토바이를 비추고 있었다.

 

가지고 온 먹을 걸 먹어치우고, 나는 콘크리트 위에 누웠다.

 

달이 무척 아름다웠다.

 

 

 

이런 달도, 도쿄에서는 볼 수가 없다.

 

나는 홋카이도에 오길 잘했다고 슬쩍 기뻐졌다.

 

여전히 나무들에 둘러싸인 어둠 속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잠에 빠져들었을 무렵, 정적을 찢는 차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은 새벽 2시.

 

이런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홋카이도에도 있구나 싶어, 눈을 떴다.

 

 

 

어떤 차가 이 시간에 홋카이도를 돌아다니나 흥미가 생겨, 나는 도로변에 얼굴을 내밀었다.

 

별다를 건 없었다.

 

단순한 트럭이다.

 

 

 

나는 몸을 돌려 다시 잠을 청하려 했다.

 

그 때,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가설 화장실 문이 열려 있었다.

 

 

 

여기 왔을 때는 분명 화장실 문은 닫혀있었다.

 

언제 열렸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적어도 내가 여기 온 이후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고, 나도 가지 않았다는 건 확실하다.

 

 

 

화장실 안쪽까지는 각도 때문에 보이지가 않는다.

 

문은 작게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다.

 

살짝 다가가보니, 흰 옷감 같은 게 보인다.

 

 

 

[누구 있어요?]

 

나는 화장실 안을 들여다 보았다.

 

순간, 내 심장은 미친 듯 뛰고,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여자가 목을 매달고 있었다.

 

나는 기겁해 뒤로 쓰러졌다.

 

24살 살면서, 놀라 엉덩방아를 찧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도대체 언제?

 

어째서?

 

어떻게?

 

 

 

그런 의문들만이 머릿 속을 가득 메웠다.

 

온몸이 벌벌 떨렸다.

 

기분 나쁜 식은 땀이 온몸에서 줄줄 흘렀다.

 

 

 

어쨌든 경찰에 신고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오토바이에 두고온 휴대폰을 가지러 가기로 했다.

 

그 순간, 큰 충격음이 울려퍼졌다.

 

 

 

깜짝 놀란 나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뒤를 돌아보니, 여자가 화장실 앞에 서서 나를 보고 있다.

 

벌벌 떨고 있는 나를 계속 바라보며, 여자는 천천히 오른팔을 올려 화장실을 후려갈겼다.

 

 

 

여자 힘으로 때렸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엄청난 충격음이 울려퍼진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그 광경에, 나는 울 것만 같았다.

 

여자의 목에는 로프가 감긴 채였다.

 

 

 

더러운 흰색 원피스.

 

길고 수북한 머리카락.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 사이로, 기분 나쁜 눈빛이 보인다.

 

 

 

어떻게 봐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여자는 무표정하게 나를 보며, 화장실을 후려갈겨 충격음을 낸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어둡고 살풍경한 휴게소에, 깜짝 놀라 엎어진 나와 화장실을 때리는 여자 뿐.

 

여자는 목을 매달았었잖아.

 

그런데 살아있어?

 

 

 

어째서?

 

그러는 사이, 화장실을 때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찾아냈다. 찾아냈다. 찾아냈다. 찾아냈다. 찾아냈다. 찾아냈다. 찾아냈다. 찾아냈다. 찾아냈다. 찾아냈다.]

 

 

 

나는 두려움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뭐야! 뭐, 뭐냐고, 너!]

 

나는 큰소리로 고함쳤다.

 

 

 

[장난치는거야?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상한 짓 하지 말라고!]

 

여자는 손을 멈추고 그대로 떨구더니, [어째서?] 라고 중얼거렸다.

 

더욱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어째서?

 

무슨 소리를 하는걸까.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데.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이... 정신 나간 여자야! 빨리 어디로 가버려!]

 

여자는 고개를 들어 나를 째려본다.

 

[싫어.]

 

 

 

여자는 그렇게 말하곤, 자기 왼팔을 물어 뜯었다.

 

[싫어. 싫어. 싫어. 혼자선 싫어. 혼자선 싫어. 혼자선 싫어. 혼자선 싫어.]

 

중얼거리며, 여자는 자기 왼팔을 물어 뜯었다.

 

 

 

피가 흘러도 멈추지 않는다.

 

살점이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여자는 울고 있었다.

 

 

 

울면서 자기 팔을 물어 뜯고 있었다.

 

여자의 입은 피로 새빨갛게 물들어 간다.

 

팔에는 이제 흰 뼈가 보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는 [도망쳐!]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이 녀석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미친 게 틀림 없다.

 

 

 

나는 오토바이를 향해 죽어라 달렸다.

 

도망치지 않으면 내가 잡혀 먹을 것이라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헬멧을 손에 들고 뒤를 보니, 여자가 없다.

 

 

 

왜 없지!?

 

그 순간, 내 어깨에 무언가가 닿았다.

 

그 여자의 피투성이 왼손이었다.

 

 

 

여자는 어느새인가 내 바로 뒤에 있었다.

 

[두고 가지마...]

 

여자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나는 손에 든 헬멧으로 여자의 얼굴을 때렸다.

 

 

 

정말 온힘을 다해, 나는 여자를 때렸다.

 

여자는 입과 코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자는 내 어깨에서 손을 떼질 않는다.

 

 

 

나는 몇번이고 헬멧으로 여자의 얼굴을 때렸다.

 

나는 절규하고 있었다.

 

간신히 여자가 내 어깨에서 손을 놓고, 뒤로 넘어진다.

 

 

 

마지막으로 헬멧을 여자의 얼굴에 던져버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나는 도망쳤다.

 

뭐야!

 

저건 도대체 뭐냐고!

 

 

 

공포와 불안을 뿌리치려, 나는 미친듯 액셀을 밟았다.

 

다음 순간, 나는 처음 보는 침대 위에서 깨어났다.

 

병원?

 

 

 

어째서 나는 병원 같은데 와 있는거지?

 

거기는 분명히 병원이었다.

 

왜 내가 여기 있는지,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나는 홋카이도의 휴게소에서 미치광이 여자한테 도망치던 도중이었을텐데.

 

하지만 그 이후 기억이 없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나는 병원에 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다.

 

사고를 낸 것도 아니다.

 

나는 병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문이 열리질 않는다.

 

밖에서 문이 잠겨 있었다.

 

[누구, 누구 없어요!]

 

 

 

그러자 간호사인 듯한 남자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신가요?]

 

[아니, 저기, 여기는 어디인가요? 저는 왜 여기 와 있는거죠?]

 

 

 

간호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담당 선생님이 곧 진단하러 오실테니까, 자세한 얘기는 그 때 하시죠.]

 

그리고는 어딘가로 가 버렸다.

 

 

 

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여기는 어디지?

 

왜 나는 병실에 갇혀있는거지?

 

 

 

문득 침대 옆에 눈을 돌리니 노트가 놓여 있었다.

 

노트를 손에 들어 내용을 보니, 거기는 내가 쓴 듯한 글이 빽빽하게 적혀있었다.

 

[도와줘. 그 여자가. 죽였는데. 아무도 나를 믿어 주질 않아.]

 

 

 

내용의 의미는 도저히 모를 소리였지만, 필체는 분명 내 것이었다.

 

잠시 노트를 바라보고 있자,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그 간호사와 경찰관인 듯한 남자가 들어왔다.

 

 

 

경찰은 내 손목에 수갑을 채운다.

 

[잠깐만요, 왜 수갑을 채워요!?]

 

경찰은 아무 말 없이 나를 후려갈겼다.

 

 

 

쓰러진 나를 깔보며, 경찰관은 [귀찮게 굴지 마.] 라고 한마디 할 뿐이었다.

 

두 남자에게 이끌려, 나는 진찰실이라고 써진 방에 들어간다.

 

백의를 입은 의사 같은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남자는 방에서 나가고, 나는 의사와 둘만 남는다.

 

[상태는 어때?]

 

의사가 묻는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왜 저는 이런 곳에 있는거죠? 저는 홋카이도에 있었는데.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돌아가게 해주세요.]

 

[너에게 돌아갈 곳 따윈 없다.]

 

[네?]

 

 

 

[너는 헬멧으로 여자 머리를 박살내서 경찰에 잡힌거야. 그 후 심신상실로 판단되서 이 병원에 격리되었고. 너는 사회적으로 완전히 말살된 존재고, 돌아갈 장소 따위 없어. 너에게 돌아갈 곳은 없다고.]

 

이 녀석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

 

내가 여자를 죽였다고?

 

 

 

내 뇌리에, 그 미치광이 여자가 떠오른다.

 

그 녀석을 죽였다고?

 

내가?

 

 

 

그래서 여기 끌려왔다고?

 

그럴리가 없다.

 

내게는 경찰에 잡힌 기억 자체가 없다.

 

 

 

하지만 지금 나는 격리병동에 갇혀 있다.

 

그건 내가 정신이상자고, 기억이 애매한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인가?

 

아니야, 달라.

 

 

 

나는 정상이야.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혼란스러운가 보군?]

 

 

 

의사가 갑자기 말을 건다.

 

[당연하잖아요.]

 

[너는 이미 사회적으로 죽은 몸이야. 기분이 어떤가?]

 

 

 

[뭐라고?]

 

이 자식, 나를 도발하는건가?

 

내가 사회적으로 죽은 몸이라고?

 

 

 

무슨 생각일까.

 

그딴 거 알까보냐.

 

[나는 누구도 죽인 적 없어. 사회적으로도 죽은 몸이 아니라고! 네놈은 거짓말쟁이야!]

 

 

 

[아니, 너는 죽였어! 그러니까 너는 그녀와 영원히 죽는거다! 영원히 그녀와 함께 죽어라!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이 자식!]

 

격앙한 나와 도췌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의사.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상한 공간이었다.

 

그 순간, 내 목에 미지근한 것이 달라붙었다.

 

붉은 피투성이 왼팔.

 

 

 

등골에 소름이 쫙 끼쳤다.

 

[찾았다...]

 

그 미치광이 여자였다.

 

 

 

나는 절규했다.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만큼 절규했다.

 

내게는 여자가 감옥처럼 느껴졌다.

 

 

 

어둡고 음습한, 차가운 벽에 둘러싸여 영원히 나갈 수 없는 감옥.

 

의사가 일어서 내 양어깨를 잡는다.

 

[너는 나나코를 죽였다! 너는 영원히 나나코와 함께 죽어야 한다! 이제 내게는 무리야! 이 아이는 어둠 속에서 죽었어! 이 아이의 고독을 네가 공유해라!]

 

 

 

[싫어어어어어어어!]

 

그 순간, 눈앞이 녹색으로 물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도로변 풀숲에 넘어져 있었다.

 

 

 

다친 곳은 없었다.

 

오토바이도 옆에 쓰러져 있었지만, 어디 고장난 곳은 없었다.

 

꿈...?

 

 

 

나는 꿈을 꾼 걸까?

 

주변을 돌아보자 그 휴게소가 보인다.

 

가설 화장실은 없었다.

 

 

 

시간은 아침 8시.

 

나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이상한 체험이었다.

 

 

 

분명 나는 꿈이나 환상에 놀아나고 있었던 거겠지.

 

그 후, 나는 무사히 홋카이도 일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이후, 그 여자는 내게 씌게 된다.

 

 

 

그건 또 나중에 털어놓을 이야기가 되겠지.

 

결과만 놓고 말하자면, 이제 더 이상 그 여자는 없다.

 

어느 영능력자 덕에 그 여자를 보내줄 수 있었다.

 

 

 

나는 그 영능력자가 없었더라면 미쳐 죽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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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어촌이었는데, 그 앞바다에는 전쟁 도중 침몰한 잠수함이 있다는 소문이 떠돌곤 했습니다.


그렇게 깊은 바다는 아니라 잠수해서 확인해보니, 분명히 잠수함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가라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종전 직후였기에, 곧 GHQ에서 조사단이 나와 확인을 하고, 며칠 있다 돌아갔습니다.


할아버지네 댁은 시골에서 가장 큰 집이었기에, 조사 나온 미군들이 묵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언뜻 통역을 맡은 일본계 군인한테 이런 말을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잠수함 안에서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던데...]


돈쓰 쓰쓰쓰돈쓰 쓰돈쓰쓰 돈쓰돈쓰쓰...


모스 부호였습니다.




미군들은 곧장 일본 해군 모스 부호를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타:-・, 스:---・-, 케:-・--, 테:・-・-- (たすけて, 살려줘)


역시나 일본어 모스 부호였습니다.




미군은 전쟁 도중 이미 일본군 암호를 죄다 해독하고 있었기에, 작전 명령마저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일본어와 모스 부호를 알고 있는 정보 담당 군인도 많았겠죠.


침몰 잠수함을 조사하러 왔던 미군 병사들은 잠수복까지 있고 본격적인 장비는 다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물에 들어가보지도 않고 그대로 철수했었노라고, 할아버지는 내게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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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들은 이야기다.


그 할머니는 젊을 적 해녀를 했었다고 한다.


세상은 워낙에 호경기라, 젊은 해녀라도 물질 조금만 하면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었다니.




그 동네는 시골이라 딱히 경쟁자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날은 바다도 잠잠하고, 아침부터 해산물이 잔뜩 잡혔다고 한다.


그녀는 평소 가지 않던 어장으로 발을 돌렸다.




작은 언덕을 돌아서면 암초가 있다.


물의 흐름이 복잡하고 여기저기 바위도 있어, 위험해서 다들 꺼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러니만큼 큰놈들을 잡을 기회도 많다.




물속으로 뛰어들자 꽤 쏠쏠하게 잡히더란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들어갔을 때 이상한 걸 봤다고 한다.


밀짚모자를 쓴 소년이 둘, 잠자리채를 들고 달려가더라는 것이다.




오싹한 나머지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몰래 배에 올라, 가슴을 쓸어내리며 바닷가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 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 무렵에는 아직 여우나 너구리한테 속아넘어간다는 말을 곧잘 했었지만, 바닷속에서도 그런 일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니까.]




그렇게 말하는 할머니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운 듯, 즐거운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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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괴담][2ch괴담][688th]텅빈 쓰레기통

괴담 번역 2016. 5. 23.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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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가 살던 곳은 지은지 30년은 더 된 낡아빠진 2층짜리 목조 아파트였다.


역 근처에 있었지만 워낙에 오래된 곳이라 그런지 주변 집들에 비해 집세가 훨씬 쌌다.




다른 곳보다 싼 집을 찾아 모인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당연히 주민들도 그리 유복한 사람은 없었다.


하루종일 기침만 하고 있는 노인에, 사시사철 뭔 소리인지도 모를 말로 싸움만 일삼는 외국인 부부까지.


그런 곳에서 살았었다.




당시 나는 프리터라, 일은 하고 있었지만 수입은 적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방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이었다.




버린 적이 없는데, 쓰레기통이 비워져 있었다.


쓰레기를 훔쳐갈 사람이 있을리 없으니 그저 내가 착각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뒤, 또 쓰레기통이 비워져 있었다.




나는 확신했다.


누군가가 쓰레기를 훔쳐가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왜 쓰레기를...




결국 나는 고작 쓰레기 따위야 마음대로 하라고 생각하며,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계속 일어났다.


이번에는 몇장 없는 팬티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이었다.




코인 세탁소에 들러 세탁물을 가지고 왔는데, 어제 입었던 놈이 사라져 있었다.


그 팬티는 며칠 뒤 방 안에서 발견됐다.


왠지 이상했다.




부엌에 쌓아둔 설거지거리가 다 정리되어 있기도 했다.


물론 내가 한 적은 없는데.


어느날, 집에 돌아오니 옷장 안에서 소리가 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옷장을 열었지만, 당연히 안에는 아무도 없다.


며칠 더 지나, 감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조퇴하고 평소보다 좀 빨리 집에 왔다.


집 문을 열자, 그 녀석이 있었다.




다 쓴 나무젓가락을 빨며, 그 여자는 나를 보았다.


나는 큰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도망쳤다.


주변 사람한테 전화를 빌려 경찰을 불렀고, 곧 경찰차가 왔다.




사정을 말하자 경찰은 집을 조사하러 들어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자, 여자의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곧 경찰한테 잡혀나왔다.


다음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 찾아갔다.




범인은 옆집에 혼자 사는 여자였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낡은 아파트라 벽장 천장은 쉽게 떼어낼 수 있어, 거길 통해 내 방으로 드나들고 있었던 듯 했다.




처음에는 그저 옆집에 누가 사나하는 호기심에서였지만, 그것이 점차 연애 감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내가 그 여자를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긴 머리카락에 잔뜩 야윈 모습은 꽤 기분 나빴다.




경찰관은 내게 말했다.


저 여자는 정신병이 있으니 곧 석방될 거라고.


왠만하면 이사를 하는게 안전할 거라고.




나는 짐을 정리해 친구네 집에 잠시 얹혀살다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 일이 있고 1년 정도 지나 서서히 잊어가고 있을 무렵, 문득 나는 집 정리를 하다 앨범을 펼쳐보게 되었다.


그 여자의 사진이 내 사진 옆에 풀로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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